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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원서를 들고 대학에 가기 전날 밤, 나는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고층 빌딩, 세찬 비바람, 그리고 바깥에서 흔들리는 내 빨래.
    떨어질 것 같았지만, 꿈속의 나는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단단히 고정해 놨어.”

     

     

     

    오르락내리락, 흔들리는 성적표와 마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시작했다.
    매달 치르는 모의고사 성적은 널뛰기의 반복.
    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이 동시에 잘 나와야 상위권이 되는데,
    항상 한 과목은 성적이 좋지 않아 점수를 깎아먹었다.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10월이 되면 세 과목 다 잘 볼 거라고

    그리고 대학입학학력고사를 보는 날에는 내 실력을 발휘할거라 위로했다. 

    이렇게 위안하면서 1년을 버텼다.

     

    막상 원서를 써야 하는 날,
    국영수 성적이 들쭉날쭉해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세 과목이 다 잘 나왔다는 가정 아래 대학을 골랐다.
    현실은 불안했지만, 마음은 용기를 냈다. 

    부모님은 등록금이 싼 지방 국립대를 추천하셨지만
    나는 서울을 선택했다.

     

    초고층 빌딩, 그리고 비바람 속의 빨랫줄

    원서 제출하기 전날, 나는 꿈을 꿨다.

    초고층 빌딩 안에 살고 있었고,
    창밖에는 영화처럼 유리창이 부서질 듯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건물 외벽에 매달린 빨랫줄 위엔
    내 옷들이 마구 펄럭이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 휘청거리면서도, 이상하게 빨래는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빨래집게로 단단히 고정해 놨으니까 괜찮아. 안 떨어져.”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흔들려도 괜찮아, 나는 단단히 고정돼 있으니까

    눈을 뜬 순간,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빨래는 나였다.
    내가 견뎌온 시간, 쏟아부은 노력.
    그 모든 것들이 바람 속에서 휘청거리지만
    결국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나의 ‘무언가'였다.

     

    부모님의 걱정,
    오락가락하는 성적표.

    하지만 꿈속에서 나는 흔들리는 빨래를 보며
    무너질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던 것이다.


    꿈은 마음이 보내온 확신의 언어

    그 꿈이 특별했던 이유는,
    성공을 예언했기 때문이 아니다.
    불안한 현실을 뚫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었기 때문이다.

     

    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선택한 이 길,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 말 덕분에 나는 마지막까지 내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다.

     

     

    흔들리는 날, 당신에게도 이 말이 필요하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삶의 비바람 앞에 서 있을지 모른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혹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휘청이는 걸 느낄 때

    이 말을 조용히 마음에 걸어두었으면 한다.

     


    “괜찮아. 단단히 고정해 놨어.”

    꿈은 때때로
    우리가 잊고 있던 확신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실 이야기

    부모님께는
    지방 사범대학 중 한 곳에 원서를 넣었다고 말한 뒤,
    부모님 몰래 원서를 들고 서울로 향했다.

    그 시절엔 대학교 입시지원서를 직접 접수하러 가야 했다.
    인터넷 원서 접수란 게 없던, 그런 때였다.

     

    만약 떨어졌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내가 그토록 바랐던 것처럼
    국영수 성적이 최고로 나왔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발표일이 다가오도록 소식이 없자
    아버지는 직접 대학 입학처에 전화를 걸어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셨고,
    좀 과장하자면, 그 자리에 주저앉으셨다고 했다.

     

    며칠 뒤,
    서울 모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을 때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미친X…”이라고 말씀하시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 대학에 진학했고,
    무사히 졸업했다.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빨랫감에 관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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